나는 그때, 하루종일 매달린 논문 번역을 끝냈다. 과제 제출은 오늘 저녁까지인데 번역만 끝냈을 뿐 컴퓨터로 입력작업을 아직 하지 못했다. 컴퓨터만 쓸 수 있으면 끝낼 수 있는데, 저녁까지 영어 수업이 있다. 번역을 다 끝내놓고도 과제 제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.
무슨 일이든 닥쳐서야 열나게 하는 내 성격을 버릇처럼 원망하면서 결국 영어 수업을 제꼈다. 컴퓨터실에 숨어들어가고 있는데 배탈나서 수업 중에 화장실로 뛰쳐나온 영어선생님과 딱 마주쳤다.
나는 영어선생님이 내 얼굴을 모르길 바랐지만, 그럴 리가. 영어 시간엔 별 짓 안해왔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영어선생님도 날 알았다. 복통이 고통스러운지 왼쪽 눈을 찡그리며 선생님은 날 한참 바라보다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.
딱 걸렸지만 아무튼 나는 논문 과제를 제출해야 했다. 이 컴퓨터실은 안되겠다 싶어 동관 컴퓨터실로 뛰었다. 건물 밖으로 나가 지붕덮인 보도블럭을 뛰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 가고 있었다. 이러다간 컴퓨터 작업을 할 시간조차 모자라질지 모른다.
다급한 마음 속에 나는 깜박, 잠이 얕아졌다. 그 모든 것은 꿈이며, 나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고, 따라서 더 이상 과제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. 그리고 사르륵 다시 잠이 들었다. 보도블럭을 뛰던 나는 얌전히 걷기 시작했다. 나중에 불러 나를 혼내야 했던 영어선생은 이제 나를 혼낼 이유를 잃은 채 복통에서도 해방되어 다시 마주친 나를 민망한 표정으로 쳐다보고는 교실로 돌아갔다.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옥상에 올라가 바람 부는 교정을 내려다보았다. 벌써 10년도 더 된 고등학교의 풍경을 즐기며 이제 무엇을 할까 느긋하게 생각했다. 얕은 잠이 준 꿈 속에서의 자유를.


덧글
아련 2009/10/08 23:50 # 답글
굉장히 로맨틱한 여운.이걸 군대의 경우로 바꿔 읽으면. . . ( ..)
아르 2009/10/09 01:30 #
재입대.. ㅋㅋㅋsengbin 2009/10/09 22:53 #
그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그 세계의 주인이 되었다. 라는 것이지,자. 군대의 주인이 되어봐라
아르 2009/10/09 01:30 # 답글
그렇다니까. 꿈이라고 인식한 순간.장동건과 원빈과 2pm, 2am은 너의 것
에테메난키 2009/10/09 09:34 #
그럼 전 임수정이요.아르 2009/10/09 18:43 #
전 이미 꿈속에서 2pm을 감금한 바 있지요. 이제 시카도 감금해야지 하악하악sengbin 2009/10/09 22:54 #
난 전지현세츠다 2009/10/11 21:38 # 답글
전 하선해서 휴가 나온지 한달도 안되서 다시 끌려가는 꿈을 생생하게 꿨습니다.끔직하더군요.
sengbin 2009/10/11 22:01 #
크악... 군대 다시 가는 꿈에 버금가는 걸요. ㅠㅠ 꿈은 반대랍니다.ZOON 2009/10/14 23:49 # 답글
전 군대에 있을 때 친구들과 소풍을 가면서군장매고 행군하는 꿈을 꿨습니다... 리얼하더군요.